| 이진송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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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ht43oso 작성일 25-06-07 14:14 조회 3회 댓글 0건본문
| 이진송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후문 앞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이 글이 발행되었을 때는 제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을 것이다. 지난 5월 27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세 번째 TV 토론 ‘정치개혁과 개헌’ 주제 토론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발언을 전달하며 폭력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이것이 여성혐오인지 아닌지” 묻는 취지였다고 하나, 갈라치기의 혐오정치가 정체성인 이준석 후보가 갑자기 여성혐오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캐비닛이 삐끼삐끼를 출 소리다. 해당 발언은 명백하게 성폭력을 도구화하여 다른 후보를 비난하려는 목적이다. 당황한 권영국 후보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고 TV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갑작스러운 언어 성폭력에 노출되었다. 즉각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준석 후보에 대한 징계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21대 대선 선거방송심의위언회(선방위)는 당초 이준석의 발언은 “방송사와 관련 없는 후보자 개인 발언”이라는 이유로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이후 입장을 바꿔 대선 직후 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 사태는 단순히 문제적인 개인의 기행 혹은 말실수가 아니다. 대선후보로 출마한 정치인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폭력적인 표현을 사용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사이버 공론장과 토론의 실태를 보여주는 징후이다.이준석 후보가 그런 말을 한 배경은 ‘토론을 지배하는 나’라는 도취다. 그는 핵심을 이탈하면서 상대의 말을 극단적으로 왜곡하고, 작은 부분을 부풀려 맥락 자체를 꼬는 화법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상대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거나, 해명하려고 들면 꼬투리를 잡으며 ‘승리’로 받아들였다. 토론은 이기고 지는 전투가 아니라 논의와 상호작용의 행위건만,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처럼 임한 것이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태도임에도, 20년 가까이 우려 먹고 있는 하버드 학벌의 후광과 그를 패널로 기용하여 무비판적인 멍석을 깔아준 방송국의 지원으로 말 잘하는 청년, 토론의 제왕(네?)으로 행세했다. 상대를 당황시킬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해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구가 방송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언어 성폭력을 그대로 재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폭력의 재현이 과연 폭력을 고발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고발과 비판을 명분으로 폭력의 쾌락을 누리지 않는가 하는 | 이진송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후문 앞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이 글이 발행되었을 때는 제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을 것이다. 지난 5월 27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세 번째 TV 토론 ‘정치개혁과 개헌’ 주제 토론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발언을 전달하며 폭력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이것이 여성혐오인지 아닌지” 묻는 취지였다고 하나, 갈라치기의 혐오정치가 정체성인 이준석 후보가 갑자기 여성혐오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캐비닛이 삐끼삐끼를 출 소리다. 해당 발언은 명백하게 성폭력을 도구화하여 다른 후보를 비난하려는 목적이다. 당황한 권영국 후보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고 TV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갑작스러운 언어 성폭력에 노출되었다. 즉각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준석 후보에 대한 징계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21대 대선 선거방송심의위언회(선방위)는 당초 이준석의 발언은 “방송사와 관련 없는 후보자 개인 발언”이라는 이유로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이후 입장을 바꿔 대선 직후 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 사태는 단순히 문제적인 개인의 기행 혹은 말실수가 아니다. 대선후보로 출마한 정치인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폭력적인 표현을 사용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사이버 공론장과 토론의 실태를 보여주는 징후이다.이준석 후보가 그런 말을 한 배경은 ‘토론을 지배하는 나’라는 도취다. 그는 핵심을 이탈하면서 상대의 말을 극단적으로 왜곡하고, 작은 부분을 부풀려 맥락 자체를 꼬는 화법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상대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거나, 해명하려고 들면 꼬투리를 잡으며 ‘승리’로 받아들였다. 토론은 이기고 지는 전투가 아니라 논의와 상호작용의 행위건만,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처럼 임한 것이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태도임에도, 20년 가까이 우려 먹고 있는 하버드 학벌의 후광과 그를 패널로 기용하여 무비판적인 멍석을 깔아준 방송국의 지원으로 말 잘하는 청년, 토론의 제왕(네?)으로 행세했다. 상대를 당황시킬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해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구가 방송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언어 성폭력을 그대로 재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폭력의 재현이 과연 폭력을 고발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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